2022-06-07 14:15:51
워런 버핏 아는 척 잘하는 법
기술주 폭락과 함께 버크셔 주가가 시장을 이기면서 수년간 치욕 당하던 버핏 지지자가 기를 펴고 있다. 유튜버들도 태세를 바꿔 그의 건강한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 인용하는 '버핏 명언' 상당수는 틀린 얘기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을 GDP로 나눈 '버핏 지수'는 버핏이 닷컴 버블을 '예상'하는 도구였다고 소문나면서 유명해졌다. 2015년부터 이 지수가 100을 넘었다며 폭락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의 이름까지 붙은 지수니 걱정할 만도 하다.
그런데 정작 버핏은 이 지수에 신경쓰지 않는다. 2015년 주총 때 한 주주가 '버핏 지수가 너무 높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버핏의 답은 '버핏 지수는 금리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습니다, 지금은 초저금리로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요'다. 금리가 낮은 데 뭔 소리? 라고 일축한 셈.
2013년부터 버핏 지수가 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폭락장이 온다'는 소리가 언론에 도배됐는데, 정작 장본인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던 것.
버핏이 기술주를 싫어한다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는 것도 틀린 얘기다. 애플 얘기가 아니라 구글을 놓친 걸 인생의 중요한 실수로 꼽을 정도다. 버크셔의 보험사(가이코)의 구글 CPC가 얼마인지까지 꿰고 있다. '버핏은 기술주는 안 산다' 같은 규칙은 없다.
'10년 간 함께 할 주식이 아니면 10분도 갖고 있지 마라'는 장투 권장 격언도 행동과 다른 면이 있다. 사실 버핏의 커리어 초기는 단타 인생이었고, 최근엔 MS의 바이아웃을 기대하며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주식을 샀다. 그는 MS의 인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는데, 참고로 버핏의 절친이 빌게이츠다.
주총 때마다 비트코인 얘기가 나오면 그는 농장과 대비하며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예전엔 전 세계 금을 다 모아 놓아도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며 같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가 꼭 생산 수단만 투자하는 건 아니다. 환시장에서 파생상품 단타도 많이 쳤다.
또 다른 단골 주총 소재가 버핏의 월스트리트 디스다. 투자은행은 투자자를 발라먹는 존재라며 혐오를 드러내는데, 사실 그는 월스트리트 많은 회사의 대주주이자 그들의 절친이다. 버크셔 포트폴리오의 4분의 1이 금융주다. 월가의 상어떼 주인이 버핏이다.
90년대 LTCM 위기 당시에 골드만삭스와 짜고 숏 스퀴즈를 유도해 이 펀드를 홀랑 들어 먹으려던 작전은 유명하다. 국가를 상대로 국채 시장서 사기를 친 살로먼 브라더스의 주주이기도 했다. 물론 그가 개입한 건 아니지만. 여하튼 그는 월가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인 것.
조지 소로스처럼 어느 나라 중앙은행을 공격하거나 엘리엇처럼 기업을 떨게 하는 이야기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융위기 때 대기업을 거의 꽁으로 먹으려고 밀당하는 모습을 보면 닳고 닳은 월가 큰 손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그의 부인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인상 좋은 아저씨 만은 아니기도 하고.
그의 복잡한 투자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돈버는 데 왕도는 없다는 걸 배운다. 변동성에 지쳐 버핏에서 안식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람 만큼 역동적으로 투자해온 사람도 없다. 돈되는 일은 다 하고, 그 나이에도 공부한다. 돈 버는 법칙은 없다, 가 유일한 교훈.
공식적으로 버핏이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권한 투자 방법인 S&P500 인덱스 펀드 투자와 버크셔 매수 뿐이다. 멍거는 인생에서 부자가 되는 데는 주식 3개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곤 말하지 않는다. '~하고 끝' 할 만큼 투자가 쉬운 게 아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버핏은 격언 몇 개로 소비하기엔 다면적이고, 무엇보다 말빨이 끝내주기에 아까운 사람이다. 주총 발언과 주주서한을 모은 <워런버핏 바이블>, <워런버핏 라이브>는 모두 6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각각 하루 만에 다 읽다. 낄낄거리며 읽은 벽돌책은 이게 유일한 듯.
아무튼 언론이나 유튜브에서만 보기엔 버핏은 너무 재밌는 사람이고, 꼭 벽돌책으로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
남궁민
392 views꼬마 , 11:15